본문 바로가기
  • 윤대일의 국민응원

아시안게임24

[윤대일의 응원문화]인천아시안게임에 대한 견해 인천아시안게임(2014. 9. 19 ~ 10. 04) 16일간, 인천광역시 일대에서 펼쳐졌으며 45개국 1만3천명의 선수단이 참가했다. 대한민국은 금메달 79개, 은메달 71개, 동메달 84개를 획득하며 종합 2위를 달성했다. 1998년 방콕, 2002년 부산, 2006년 도하, 2010년다시 말하지만 필자는 아시안게임 원정응원을 다녀보면서 현장에서 광저우 대회까지 총 5연속 2위달성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선수단의 결과는 참으로 훌륭했다. 남자축구의 금메달을 비롯해서 초반 사격등에서 어려움을 겪었던데 비해 목표한 90개의 메달사냥에는 실패했지만 괜찮은 결과를 얻은 것이다. 이번대회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데는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관리 및 운영 시스템에 대한 미숙함이 가장 큰 문.. 2014. 10. 6.
[윤대일의 응원문화]2014 인천아시안게임 북한응원단 파견! 환영! 2014. 9. 19(금) ~ 10. 4(일) 인천에서 개최되는 '인천아시안게임'에 북한은 원정응원단을 파견하겠다고 발표했다.(공화국 정부 성명)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민족 단합의 분위기를 마련하기 위해"라는 취지로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북한응원단의 파견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2005년 인천아시아육상대회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북한은 OCA에 육상과 축구 등 14개 종목에 참가할 선수 150명의 명단을 제출했습니다. 오랜만에 환영할만한 일이 터졌다. 북한과의 교류는 계속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북한도 통일을 오랜숙원사업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평화통일, 북한은 사회주의 노선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주의 통일', '적.. 2014. 7. 7.
[윤대일의 2014소치동계올림픽] 총평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한국팀의 메달 현황은 다음과 같다 이상화 선수 그리고 쇼트트랙 여자선수들의 금메달, 총 3개의 금메달을 획득했고 김연아 선수의 안타까운 은메달, 값진 스피드스케이팅 추월부문에서 은메달 러시아의 텃세속에서 선전을 해준 우리선수들에게 깊은 경의와 감사를 표명한다. 지금은 장애인올림픽이 개막해서 진행중인데... 러시아의 텃세가 정말 대단하다는 보도를 접하고 있다. 혹자는 우리나라 88올림픽 당시에 한국의 텃세또한 그러했다는 표현을 썼다. 과연 앞으로 올림픽 등 국제경기에서 페어플레이와 스포츠 정신이 살아있는 경기를 볼수있을 지 의문이다. 이런식의 개최국 횡포가 계속된다면 과연 올림픽의 가치가 점점 몰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주요 국제대회에 해외원정까지 가며 한국선수들을 응원했던 필자로서 괴.. 2014. 3. 10.
[2011'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곽민정 동메달!!! 곽민정선수는 2월 4~5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국립 실내사이클경기장에서 벌어진 피겨 여자 싱글에서 동메달을 걸었다. 한국 피겨사상 아시안게임 싱글 종목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획득했다. 아시아에는 일본이나 중국의 벽에 부딪쳐 메달이 없었으나 이번대회에서 곽민정선수가 드디어 첫메달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 시즌에 처음 시니어 무대를 밟은 곽민정은 유난히 큰 대회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많이 냈다. * 국제 데뷔무대였던 2010년 1월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개인 최고점인 154.71점 6위! * 2월 벤쿠버동계올림픽에서 155.53점 13위! *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허리부상으로 인해 아쉬운 22위! * 계속되는 부상과 코치 교체 등으로 두 번의 그랑프리 시리즈 9위와 11위! 2010년과 올해도 전국종합선수권대회에서.. 2011. 2. 6.
광저우아시안게임 종합2위 쾌거 장하다 태극전사여~ 광저우 아시안게임 종합2위의 쾌거로 한국선수단이 귀국했다. 76개, 은메달 65개, 동메달 91개를 획득해서 중국에 이어 종합2위를 기록했다. 3위는 일본으로 금메달 48개밖에 되지않았다. 이번 대회에서 늘 일본과의 2위다툼에서 업치락 뒤치락 했던 과거의 모습에서 우리는 당당하게 따라 올수없는 빛나는 2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개최국이 중국이라는 것을 감안하다면, 우리가 더좋은 성적을 거둬서 중국과의 차이를 현격하게 줄였을 거라는 판단도 할수있다. 이번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원정응원단으로 참여하지 못한 점 필자는 애석하게 생각하고 선수단에게 머리숙여 송구 마음을 전하고 싶다. 대한민국응원문화운동본부라는 큰뜻을 가지고 지금도 노력하는 필자에게 앞으로 좀더 노력 하고 힘을 내라는 채찍이라 여겨진다. 나는 한국선.. 2010. 12. 15.
6탄[2007장춘동계아시안게임] 윤대일이 말하는 생생한 원정응원 최종후기 ( 피겨 김나영 ) 이번대회에 국민여동생 연아퀸 김연아선수가 부상으로 출전하기 않았습니다. 정말 아쉬웠습니다. 대신 국내선수로 김나영선수가 피겨부문에 한국대표로 참가했습니다. 쇼트트랙이나 스피드스케이팅처럼 다이나믹하지는 않지만 우와하고 아름다운 선율에 나비처럼 사뿐사뿐 날아오르는 선수들의 연기를 생각할때 정말 동계스포츠종목의 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기장은 지난번 쇼트트랙경기가 펼쳐지는 곳에서 그래로 이어졌습니다. 전용경기장이 아니라 좀 아쉬웠습니다. 역시 피겨에 대한 관심이 이곳 장춘에도 대단하더군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관람객들이 들어차 있었습니다. 필자와 응원원정 대원들도 경기장한켠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국유학생들이 와있었습니다. 이젠 유학생들이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해주기도 했습니다. 김나영선수.. 2009. 4. 14.
5탄[2007장춘동계아시안게임]윤대일이 말하는 생생한 원정응원 ( '백두산은 한국땅'/쇼트트랙결승 ) 쇼트트랙을 빼고 한국은 동계올림픽을 말할 수 없습니다. 전세계인들이 우리의 쇼트트랙에 이목이 집중되어있습니다. 여자는 3,000미터, 남자는 5,000미터로 릴레이경기가 진행됩니다. 여자부문 결승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대회막바지에 금메달 경쟁이 가장 치열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중국과 한국의 금메달경쟁으로 인해 경기장입장이 쉽지 않으리라 생각해 택시를 타고 미리부터 일찍 출발했습니다. 예상보다 경기장입구는 심각했습니다. 계속내린 눈에 길도 미끄러웠지만, 현지중국인들이 경기 4시간전부터 와서 줄을 서있다고 전해들었습니다. 엄청난 인파가 경기장입구를 가로질러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그나마 필자와 원정응원단은 외국인이라, 외국인전용출입구로 먼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현지중국인들한테 미안.. 2009. 4. 10.
4탄[2007장춘동계아시안게임]윤대일이 말하는 생생한 원정 응원 ( 남북한 여자아이스하키 / 컬링 ) 장춘동계아시안게임 원정응원의 여정중 가장 기념이 될만한 날입니다. 대회가 막바지에 오면서 각종 팀경기의 결승경기가 여기저기에서 펼쳐졌습니다. 모든 일정을 다소화하기는 3명이란 인원이 너무 적었습니다. 한국여자아이스하키팀의 경기쪽으로 2명의 응원리더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필자는 컬링경기장으로 향했습니다. 올림픽이라면 메달권에 들어가기 어려웠겠지만, 아시안게임 컬링은 금메달이 기대되는 종목이었습니다. 필자가 들어선 컬링 경기장은 협소했습니다. 대학내 경기장시설을 리모델링해서 이번대회를 위해 만든 경기장이었습니다. 1층플로어가 경기장이며, 관중석은 2층 펜스 한면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깜짝놀랬습니다. 응원단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평일낮 시간을 감안한다고 해도 결승경기인데 없어도 너무 없었습니다. 필자가.. 2009. 4. 8.
3탄[2007장춘동계아시안게임]윤대일이 말하는 생생한 원정 응원 ( 대한체육회 김정길회장방문/ 2014평창동계올림픽유치홍보단 응원 ) 대한체육회에서 장춘한인회사무실을 방문하셨습니다. 북경에서 오신 장사장님을 필자가 우리팀의 원정 응원단장님으로 추대했습니다. 장사장님은 사업하시는 분이셔서 이런 응원분야는 잘모르시는 분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우리가 응원원정대로 발탁되어 장춘에 파견되기 때문에 현지 관리자로 부탁받은 분이셨습니다. 그분도 장단장님도 우리를 처음봤을때 관광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하더군요. 장사장님 또한 서울에서 부탁하신 붉은호랑이 본부장님과의 친분으로 이일을 수락하신분이었습니다. 여하간 장사장님도 어떤면에서는 관리자의 역할로 우리를 감독하시기위해 오신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분이 이제 필자와 함께 응원대열에서 최선을 다해 응원을 펼쳤고, 누구보다더 열심히 응원현장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필자와 대원모두가 원정응원단 단장님으로 .. 2009. 4. 3.
2탄[2007장춘동계아시안게임] 윤대일이 말하는 생생한 원정 응원 ( 스피드스케이트 이규혁 ) 어제의 숙취가 좀 남았지만 누룽지로 속을 달래고 일찍부터 한인회사무실로 이동했습니다. 장사장님이 먼저 사무실에 올라가서 오늘 경기장 일정을 전해받았습니다. 유학생들을 3팀으로 구분해서 한팀은 스키장으로 가고, 또한팀은 스피드스케이트장, 마지막한팀은 바이애슬론경기장으로 보내는 계획을 들었습니다. 필자는 메달가능성이 높은 스피드스케이트장을 가기고 결정했습니다. 이규혁선수의 경기를 보기위해 버스에 올랐습니다. 어제 쇼트트랙경기장에서 본유학생들이 환호의 박수를 보내옵니다. 감사했습니다. 인사하며 탔는데 자리없더군요. 유학생중 몇명이 우리를 위해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도시락도 챙겨주었습니다. 버스는 출발해서 경기장에 도착했습니다. 서둘러 내려서 경기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경기장은 정말 국제대회경기장인가 싶은 정도.. 2009. 4. 3.
1탄[2007장춘동계아시안게임] 윤대일이 말하는 생생한 원정 응원 ( 장춘교민회, 쇼트트랙 경기 ) 드디어 장춘아시안게임이 왔습니다. 벌써 몇년이 지난일이지만 아직도 그기억은 생생합니다. 이번 장춘동계아시안게임의 응원원정은 '한민족응원단' 붉은호랑이에서 지원했습니다. 다시한번 이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무쪼록 한민족응원단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2006카타르도하아시안게임에 이어 두번째로 한민족응원단의 지원을 받아 함께 해외원정의 길에 올랐습니다. 장춘공항에 도착하자 북경에 계시는 장사장님이 맞으로 오셨습니다. 기간내내 우리와 함께 통역과 기타 교민들과의 만남을 주선하셨습니다. 반가운 인사와 함께 택시에 올라탔습니다. 눈이 녹지않아서 살얼음판 같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건 아무도 스노우체인을 하지않고 운전한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발발기어다니면서 왜 하지않았을까하는 의문이 생기더군.. 2009. 4. 3.
[2007장춘동계아시안게임] 개요 1) 대회개요 대 회 명 제6회 동계아시아경기대회 대회기간 2007년 01월 28일 ~ 2007년 02월 04일 대회장소 중국 장춘 대회규모 총 26개국 1100명 개 회 식 2007년 01월 28일 20:00 (올림픽스타디움) 엠블렘 마스코트 2) 역대 동계아시안게임 개최국 & 한국성적 회차 개최국 개최일정 참가국 1위 한국성적 1 삿뽀로(일본) 1986.3.1 ~ 3.8 7개국 참가 일본 3위 2 삿뽀로(일본) 1990.3.9 ~ 3.14 10개국 참가 일본 3위 3 하얼삔(중국) 1996.2.4 ~ 2.11 16개국 참가 중국 4위 4 강원(대한민국) 1999.1.30 ~ 2.6 21개국 참가 중국 2위 5 아오모리(일본) 2003.2.1 ~ 2.8 29개국 참가 일본 2위 3) 종합순위표 순위 국.. 2009. 4. 3.
[제15회 도하아시안게임] 윤대일이 말하는 생생한 폐막식 ( 제16회 광저우아시안게임 ) 16회하계아시안게임은 바로 중국의 '광저우아시안게임'입니다. 떠나보내고 다시 이어받는 아름다운 광경은 폐막식의 진풍경입니다. 이날 폐막식에서는 우리나라선수로는 '박태환'선수가 메인스폰서인 삼성전자 우수선수 시상을 받았습니다. 삼성의 위상도 자랑스러웠고 그리고 박태환선수도 자랑스러웠습니다. 광저우가 소개되며 중국의 아름다운 무용이 선보여집니다. 폐왕별희로 유명한 경극을 비롯한 무희들이 춤으로 다음펼쳐질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시작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 광저우아시안게임 준비위원장이시랍니다.] 2009. 3. 31.
[10탄-도하아시안게임] 윤대일이 말하는 생생한 응원 원정대 ( 폐막식 ) 20여일간 대장정의 휘나래를 장식하는 제15회 카타르도하아시안게임 폐막식날입니다. 메인경기장앞에 표를 구하기 위해 일찍 나왔습니다. 너무 비쌌습니다. 표두장을 500리알인가 주고 사고, 한장이 더필요했는데 없었습니다. 이후 한장을 1000리알에 팔고 있는 분을 만나서 700리알정도까지 흥정해서 표를 구했던 기억이 납니다. 비쌌지만 우리에겐 방법이 없었습니다. 탈탈 털어서 표를 구하고 남은 시간동안 도하전통 빵과 음료를 마시며 기다렸습니다. 입장이 시작되고, 2명은 같은 자리에, 한명은 전혀 다른자리에 떨어져 앉을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리에는 선물주머니가 놓여져있었습니다. 폐막식 식순등이 담겨있었습니다. 그리고 선물주머니에는 이상한 물건들이 가득했습니다. 사회자가 나와서 인사를 하며 선물주머니속에 물건이 무.. 2009. 3. 31.
[9탄-도하아시안게임] 윤대일이 말하는 생생한 응원 원정대 ( 권투,우슈 ) 카타르도하아시안게임 마지막경기로 종합경기장을 찾았습니다. 종합경기장옆에는 메인스타디움이 버티고 있습니다. 메인스타디움안에는 육상종목경기가 펼쳐집니다. 하지만 우리한국선수들의 메달소식은 거의 없습니다. 과거 임춘애와 장재근선수이후 세계제패는 사라진지 오래된거 같습니다. 메인경기장을 지나치면서 그곳엔 단한번도 응원을 위해 들어가지 않았다는게 너무가 슬펐습니다. 관람을 위해서라면 들어갔겠지요. 하지만 응원을 하기위해서 들어가는 날이 속히 오길 바라는 맘이 간절했습니다. 권투경기가 펼쳐지는 곳으로 갔습니다. 한국선수들이 선전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늦게 도착해서 서둘러서 들어갔지만 경기장은 만석입니다. 이리저리 기웃거렸습니다. 싸이클종목에서 만났던 태능선수촌 교회 전도사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선수촌내.. 2009. 3. 30.
[8탄-도하아시안게임] 윤대일이 말하는 생생한 원정 응원단 ( 남자 필드하키 ) 2006카타르도하아시안게임에서 가장 극적이며, 감동적인 경기중 하나는 단연 남자필드하키 결승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이제 도하는 폐막식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차올랐습니다. 며칠뒤에 있을 폐막식은 벌써부터 입장권수급이 어려울정도입니다. 개막식을 보지못한 필자와 응원대원들은 폐막식은 꼭보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본블로그를 통해 폐막식 현장에 생생한 감동도 전해드리겠습니다.^^ 한국시간으로 15일 도하의 알 아얀 하키필드로 일찌감치 향했다. 사전에 다른팀의 경기가 있었다. 중동지역 팀으로 기억되는데 자칫 옆에 잘못서있다간 맞을거 같았습니다. 경기장 밑에 내려와서 서있었습니다. 다행히 꽹가리는 2개를 가져왔는데 하나는 깨졌습니다. 이제 하나만 남았습니다. 꽹가리 채는 이미 머리가 달아난지.. 2009. 3. 30.
[7탄-도하아시안게임] 윤대일이 말하는 생생한 응원 원정대 ( 여자핸드볼 ) 여자핸드볼경기입니다. 세계최강의 실력을 가진 여자핸드볼, 하지만 편파판정과 오심으로 얼룩진 중동의 검은 판정바람으로 우리의 마음또한 얼룩졌습니다. 남자핸드볼이 그 피해의 중심에 있습니다. 대회가 끝나서도 계속되는 항의와 진정으로 사과를 받아내기는 했지만, 향후 아시안게임의 개최국들의 자기잔치로 전락하는 걸 막기위해서는 Fair-play하는 심판과 선수들의 모습이 절실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는 분명히 Fair-Play만으로는 전부다 표현되기가 어렸습니다. 권모,술수들이 난무하고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대를 수단과방법을 가리지 않고 꺽어야 하는 현실은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정글의 법칙이 통하는 밀림과 같습니다. 하지만 엄연한 규정과 규칙이 존재하는 스포츠는 우리의 현실문화와 다른 순수함이 있습.. 2009. 3. 27.
[6탄-도하아시안게임] 윤대일이 말하는 생생한 응원 원정대 ( 남자배구 ) 남자배구 결승 한국대 중국의 일전이었습니다. 도하아시안게임에서 가장 감동적인 경기중 하나라면 당연 남자배구를 꼽고 싶습니다. 저녁대신 빵한쪽을 들고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경기장시설은 새로 지어졌지만, 관람객들을 위한 식음료시설이 첨 부족하더군요. 그많은 핫도그나, 햄버거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카타르식 빵이 있기는 하지만 퍽퍽한 맛으로 식사대용으로는 좋지않았습니다. 여하간 목적은 한국팀이 금메달을 목에 걸수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말고는 없습니다. 콜라에 빵한쪽을 먹고 일찌감치 경기장 한국진영쪽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카타르 도하도 별다른 프로스포츠가 없기때문에 구기종목에는 관람객들의 관심이 집중했습니다. 표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역시 우리의 호프, 교민응원단단장님의 큰힘으로 경기장에 무리없이 들어갈.. 2009. 3. 23.
[5탄-도하아시안게임] 윤대일이 말하는 생생한 응원 원정대 ( 양궁 ) 오늘은 양궁장으로 갔습니다. 도하아시안게임에서 가장 멀리떨어져 있는 경기장중 하나라고 합니다. 정말 시내를 벗어나서 한참 사막을 달렸습니다. 주위은 온통 사막만 펼쳐져있었습니다. 이런데서 살라고 하면 미쳐버릴거 같이 끝도없는 사막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산이라도 있으면 어디가 어딘지 방향감각이라도 생겨날텐데, 이건 온통 평평한 회색모래사막입니다. 한참 만에 드디어 도착했다고 단장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우리는 경기장으로 재빨리 들어갔습니다. 오전부터 시작한 경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북소리와 꽹가리 소리가 들여옵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현장에 가보니, 정말 관중석이 작았습니다. 한 300명정도 들어갈만한 관중석입니다. 거의 현지주민들과 한국교민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멀어서 그런지 .. 2009. 3. 23.
[4탄-도하아시안게임] 윤대일이 말하는 생생한 응원 원정대 (여자축구 와 북한응원단) 남자축구경기에서 일찌감치 격돌한 경험을 가진 북한남자응원단의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경기는 여자축구경기입니다. 사실 여자축구는 북한이 우승후보라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아주 파워풀합니다. 너무일찍 경기장에 도착해서 그런지, 1시간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응원단들의 열정적 응원이 카타르도하에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특별히 중동국가들과의 경기가 있는 경기장에서는 우리들의 응원도구의 반입을 철저히 금지시키기도 했습니다. 입구에서 싸워봐고, 달래보고, 시범까지 보여도 않된다는 말에 어의가 없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교민회응원단단장님의 중재로 통과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 여자축구는 기여코 북과 꽹가리를 빼앗겼습니다. 가슴이 아팠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4강전으로 한국 여자대표팀 선수들이.. 2009. 3. 23.
[3탄-도하아시안게임] 윤대일이 말하는 생생한 해외원정 응원표류기 (남자축구) 카타르 도하아시안게임에 감동을 전부다 전하고 싶은데 많은 시간이 필요로 하다는걸 느낍니다. 응원원정대 3인이 사막 한가운데에 들어가서 펼쳐보이는 응원표류기입니다. 도하현지에 교민들에게 입소문이 돌기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3명 응원단이 있는데 격정적이며 열정적으로 응원한다고 한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오늘 부터는 골프로 말하면 겔러리랄까요 필자와 합세한 현지교민응원단들이 생겨났습니다. 늦은 저녁까지 필자의 응원체험을 안주삼아 술자리를 같이 했던 체육부장님을 카타르도하아시안게임 한국응원단장님으로 우리모두가 추대했습니다. 역시 교민응원단단장님으로 함께 하나되어 움직였습니다. 정말 아시안게임 기간동안 생업도 뒤로 미뤄두시고 헌신적으로 필자와 응원대원들을 위해 차량봉사를 하는 수고를 기꺼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비.. 2009. 3. 20.
[2탄-도하아시안게임] 윤대일이 말하는 생생한 해외원정 응원기 이튿날 아침 이른 아침식사를 목사님 사모님께서 준비해 주셔서 맛있게 먹고 체육부장님의 차량에 올라탔습니다. 반가운 인사와 함께 메인경기장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주경기장 좌우에 노천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했습니다. 비가와서 질척한 바닥에 회색진흙이 도배 되어있었습니다. 푹푹빠지는 주차장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의 늪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서 그런지 이곳은 랜드로버같은 지프스타일 차량이 인기였습니다. 기름값싸겠다. 배기량도 보통 4~5천CC더군요. 카타르는 LNG가스가 주요 수출품목이라더군요. 국내 개발관련회사들도 앞다퉈 들어와있다고 합니다. 주경기장에서는 개막식과 폐막식이 펼쳐지며, 각종 육상필드종목이 펼쳐졌습니다. 맞은편에 수영경기장이 있으며, 대각선으로 종합경기장이 있습니다. 권투, 우.. 2009. 3. 18.
[1탄-도하아시안게임] 윤대일이 말하는 생생한 원정응원기 제15회 2006카타르도하하계아시안게임( The 15th 2006 Doha Asian Game) 이제 아시아인의 제전으로 완벽하게 자리잡은 아시안게임이 벌써 15회를 맞았습니다. 2006년 12월 1일부터 15일까지 펼쳐진 본대회에 필자는 일찍부터 많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태극전사서포터즈라는 대한민국 전종목 응원단체를 2002년 10월에 설립해서 1기 창립맴버들과 함께 주요국제대회에 국가대표선수들을 응원하는 응원단을 파견하는 사업을 시작했으며, 이번 카타르도하아시안게임에 원정응원단을 보내는 전기를 맞았습니다. 이번 카타르도하아시안게임은 한민족응원문화운동본부(붉은호랑이)에서 여비와 체류비용을 후원하였습니다. 11월부터 원정에 오를 날짜를 협의 했지만 계속되는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면서 11월말 출국.. 2009. 3. 17.
[2002부산아시안게임]윤대일이 말하는 생생한 응원 (D-30, 태능선수촌 응원전) 2002년한일월드컵이 끝나고 같은해 가을에 부산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렸습니다. 대성공을 거둔 월드컵의 개최와 맞물려 아시안게임에서는 축구국가대표선수들이 꼭 금메달을 따줄거라는 기대감이 만연했습니다. 언론에서도 월드컵의 응원열기를 부산아시안게임으로 몰아가기위해 연일 아시안게임 준비소식을 전하느라 분주했습니다. 필자는 2002년한일월드컵 서울시청앞광장 응원단장이라는 꼬리표와 선동의 마술사라는 닉네임까지 얻은 상태였습니다. KBS방송에서 태능선수촌을 방문하면서 부산과 함께 아시안게임 D-30일 축하 기념행사로 선수들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위문공연을 특집으로 준비했습니다. 이날 필자는 태능선수촌현장에서 선수단들과 함께 그간의 노고를 격려하며, 승전을 불타오르게 하는 응원을 통해 선수단에게 힘을 주는 엮할을 담당하게.. 2009.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