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윤대일의 국민응원
아시안게임/2007장춘동계아시안게임 원정응원

1탄[2007장춘동계아시안게임] 윤대일이 말하는 생생한 원정 응원 ( 장춘교민회, 쇼트트랙 경기 )

by 대한민국 응원단장 2009. 4. 3.

드디어 장춘아시안게임이 왔습니다. 벌써 몇년이 지난일이지만 아직도 그기억은 생생합니다. 이번 장춘동계아시안게임의 응원원정은 '한민족응원단' 붉은호랑이에서 지원했습니다. 다시한번 이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무쪼록 한민족응원단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2006카타르도하아시안게임에 이어 두번째로 한민족응원단의 지원을 받아 함께 해외원정의 길에 올랐습니다. 장춘공항에 도착하자 북경에 계시는 장사장님이 맞으로 오셨습니다. 기간내내 우리와 함께 통역과 기타 교민들과의 만남을 주선하셨습니다. 반가운 인사와 함께 택시에 올라탔습니다. 눈이 녹지않아서 살얼음판 같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건 아무도 스노우체인을 하지않고 운전한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발발기어다니면서 왜 하지않았을까하는 의문이 생기더군요. 택기기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운전하는데 참 답답했습니다.
중간에 우려하던 일이 생겼습니다. 4거리에서 차량들이 엉켜서있습니다. 이때문에 오도가도 못하다가, 극적으로 빠져나올기회를 만났습니다. 헉~~ 헛바퀴도는 택시, 우리는 모두내려서 드디어 택시를 밀기 시작했습니다. 간신히 굴러가는 택시 다시올라타니 헛바퀴, 내려서 밀면 굴러가고, 다시타면 헛바퀴, 완전 개그입니다. 그자리에서 우리는 봅슬레이를 시도했습니다. 좌우차문을 잡고 택시를 밀며 뛰어 갑니다. '하나,둘,셋' 탄력을 받아 질주하는 택시속으로 들어갑니다. 모두가 착착착 탔습니다. '오케이' 드디어 굴러갑니다. 이런 고생으로 40분이면 올거리를 2시간 걸려서 왔습니다. ㅠ.ㅜ
오자마자 숙소에 들러 여장을 풀었습니다. 숙소는 모텔이었습니다. 그래도 신축이라 깨끗했습니다. 주엄주엄 옷을 갈아입고 교민회 사무실로 갔습니다.다행히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장사장님께서 우리를 배려해 미리 교민회사무실 인근에 장소를 얻어놓으셨습니다. 교민회 사무실에 들어가서 교민회장님과 사무국장님 그리고 체육부장님, 유학생응원단지원단장님등 핵심맴버들을 만났습니다. 이번 장춘아시안게임에 '한민족응원문화운동본부'에서 하얀색 패딩점퍼를 5000벌이상 지원한걸 알고있는 교민회는 우리의 방문에 감사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래도 달랑 3명온 필자와 응원리더들의 모습을 보고 카타르와 같이 여행온걸로 아시더군요. 이제는 익숙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말 국제대회에 많은 한인들이 원정응원단의 모습으로 그곳에 가지만, 결국 모습만 응원단일뿐 광광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걸 교민들은 모두 알고있었습니다. 그런 고정관념에서 필자와 응원리더들의 모습도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속은 상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무언가 필자의 의견을 항변하는 것보다는 경기가 펼쳐지는 체육관에서 선수들을 직접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의견보다 나을것같았습니다.
장춘은 유명대학이 있어, 한국유학생들이 많다고 합니다. 유학생들 사이에서 이번 대회를 응원하는 응원단이 자발적으로 결성되었고, 한인회에서 옷과 기타 여러가지 편의사항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식사와 이동편 등.. 오늘저녁 펼쳐질 쇼트트랙대회에 참가여부를 물었습니다. 조금있으면 이동한다는 소식에 기뻤습니다.
부랴부랴 응원도구를 챙겨들고 교민회에서 제공한 입장권을 들고 택시를 탔습니다. 조금이라도 먼저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밤이되니 정말 추웠습니다. 정말 얼어붙을거 같았습니다. 설설기는 택시에서 내려 눈길을 헤쳐 경기장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정말 추웠지만 많은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외국인전용 출입구로 줄서지 않고 들어왔습니다. 이른시간인데도 장춘현지민들이 가득합니다. 정말 편의시설도 제대로 되있지않은 경기장의 모습, 정말 아쉬웠습니다. 기념판매소는 거의 좌판수준입니다. 정말 한국이 얼마나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해있는건지 다시금 알 수 있었습니다.
대회본부석 맞은 편에 유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자리에 도착했습니다. 함께 교민회에서 제공해주는 식사를 했습니다. 도시락입니다. 한국에 도시락 뺨칩니다. 선수단들이 들어오기 앞서서 필자가 유학생들이 모여있는 응원존 팬스 중심에 서서 꽹가리를 몇차례 두드리고 인사했습니다. 간단한 응원단소개와 열심히 응원해주는 유학생분들에게 감사의 말까지 빼놓지 않았습니다. 천천히 응원의 불씨를 올렸습니다. 중국은 별다른 응원단이 없었습니다. 그냥 일상복을 입고 경기장에 와서 경기 관전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필자가 마이크도 없지만 목청을 크게 해서 말했습니다.
" 여러분 우리는 세계를 깜짝놀라게 했던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쓴나라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거리응원은 이제 세계가 인정하는 무형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곳 중국, 장춘의 하늘아래서 한국의 응원을 중국인들에게 아니 세계인들에게 다시 알리고 싶습니다. 흩어진 우리의 애국심을 다시하나로 묶고 흩어진 교민들을 하나로 화합하게 하는 대한민국의 외침을 우리의 쇼트트랙선수들의 응원하는 열정으로 불사르고 싶습니다. 여러분 얼마않되는 인원이지만 저많은 중국인들을 상대로 우리가 응원과 경기 모든것에서 승리합시다.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태극기가 이하늘에 휘날리는 모습을 우리모두 함께 열망합시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이여 두눈을 부릅뜨고 두팔을 들어올려 목놓아 외쳐봅시다. 대~한민국."
응원은 메아리가 되어 우리가슴속을 울립니다. 유학생들이 먹던 밥을 내던지고 일어섰습니다. 경기는 시작되기 전이지만, 한국의 응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중국인들이 우리의 열정적 응원에 감동하는 모습입니다. '오~ 필승코리아, 아리랑, 애국가' 등을 계속해서 함께 불렀습니다. 이런 응원의 힘은 유학생들을 깨웠습니다. 필자와 응원리더가 오기전에는 그냥 경기본다는 생각으로 유학생회에서 결정한 일이며, 응원하러 오면 학생들에게 자원봉사증을 주는 관례때문에 억지로 끌려오다 시피한 학생들도 보였지만 오늘 만큼은 모두가 달랐습니다. 
드디어 쇼트트랙 선수단이 들어옵니다. 필자와 응원리더가 지핀 응원의 불은 삽시간에 경기장 전체를 아우르기 시작했습니다. 흩어져있던 교민들이 우리의 응원존으로 모여들었습니다. 100여명의 인원이 금새 500여명을 넘어갑니다. 주변에 중국인들이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었습니다. 이 모습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한국선수들이 모습이 보이며,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중국관중들이 응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일한 한가지 구호 아시는 분들은 다아실듯합니다.

" 중구어 티 짜이요, 중궈티 짜이요 " 

이런식이었던거로 기억합니다. 해석하면, '중국 힘내라'. '중국팀 잘해라'라고 유학생들이 알려주었습니다.
이에 질세라 꽹가리와 북을 사용한 응원을 통해 선수들에게 힘을 주는 응원을 계속이어갔습니다. 출발전 선수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힘을 불어넣었으며, 출발때 조용히 했다가, 출발과 함께 맹렬한 응원을 퍼부었습니다.
이날 금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모두가 환호하며 즐거워했습니다. 한인회장님이 제일좋아하셨습니다. 정말 얼마만에 이렇게 시원하게 대한민국을 외치고, 하나되는 시간이 있는건지 모르겠다며, 감동의 말을 전했습니다.
유학생들은 물만난 고기가 되었습니다. 필자와 응원리더가 시작한 응원의 물꼬는 이제 강물줄기가 되었습니다. 교민회 회장님까지 얼시구 절시구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며, 나이드신 분들이 모두 합세하여, 응원에 동참했습니다. 경기를 마치고 모두가 우리를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관광이나 온줄알았던 분들이 우리와 악수하며, 다음일정을 물어보시고 어디로 갈거냐고 물었습니다. 유학생들도 우리의 팬이되었습니다.
정신없이 기념촬영을 마치고 교민회에서 마련한 저녁식사에 초대되어 갔습니다. 몇몇의 유학생대표도 참여했으며, 여러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 응원일정을 이야기 했습니다. 이자리에서 필자는 특별히 교민회와 유학생회의 적극적인 응원참여를 다시 부탁했습니다. 필자와 응원리더들은 일부선수를 사랑하는 팬의 입장으로 이자리에 오지않았다는 걸 강조하고, 우리가 응원하는 궁극적인 주체는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가장중요한건 교민들의 화합을 응원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교민회회장님 그리고 체육부장님 등 많은 분들이 동감하시며, 좀더 최선을 다해 응원할수있도록 돕겠다고 하셨습니다.
자랑스러운 금메달과 은메달을 동시에 얻은 날이었습니다. 모두가 감동하는 자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