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21일로 기억한다. 필자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기도 합니다. 필자가 주창해서 세워진 범국민 대한민국응원단 태극전사서포터즈 회원들이 주최하는 첫 거리응원이었습니다. 이번 거리응원은 SBS특집생방송으로 편성되어 생방송되며, 강병규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유명연예인들이 대거 출연했으며, 상암월드컵 경기장 북문 광장앞에 특설무대를 설치해 진행했습니다. 사실 시간이 무리수가 많은 행사라 태극전사서포터즈에서도 적극적이 참가자들이 올것인가에 대해 많은 우려를 했었습니다. 당시 집행부들과 함께 SBS 담당PD님과 응원현장에 참가할 응원단의 규모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몇명이라 말할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많은 인원이 올것이라 생각하고 응원전 당일날이 되어 상암월드컵 경기장 북문 특설무대를 열었습니다.
드디어 7월21일 되었습니다. SBS담당피디는 계속 많은 인원이 와야한다고 필자에게 확인전화를 합니다. 이제 물러설수도 없는 시간이기에 모든걸 하늘에 맡기고 상암월드컵 경기장 북문광장앞 특설무대로 향했습니다.
일찍 부터 대한민국응원단 태극전사서포터즈 홍보부스를 설치해서 포스터와 회원가입행사를 병행했습니다.
2014평창동계올림픽 유치홍보단도 같이 참여해서 동계올림픽의 평창유치를 홍보하였습니다. 시간은 예정에 닥쳐오고 경기장에 응원단과 관람객들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FIFA에서는 경기가 있는 주요경기장 내외부에서 FIFA에서 허락하지 않은 어떤행사나 방송도 진행할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날씨가 너무 더웠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기록적인 폭염, 폭탄이었습니다. 거기에 경기시간도 오후 6시쯤이라 무더위가 가시기 전에 모든것이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사전에 특집생방송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경기장을 찾은 응원대원들이 경기장으로 들어가거나 그늘 밑으로 자리를 피해있습니다. 정말 몇몇의 응원단과 가수 팬말고는 거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아니 폭염을 피해서 나오지 않고 경기장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정말 이날은 속이 다 타들어 가는거 같았습니다. 늘 계획된 무대에서 응원리드와 진행만 신경쓰던 나에게 실제에 참가하는 인원까지 일일히 신경써야 하니 머리에 쥐가 나더군요. 특집방송시간은 자꾸 다가오고 1000명 도 않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담당 피디 얼굴 구겨져서 필자를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필자도 할말을 잃었었습니다. 모든 책임은 안일하게 대처한 필자의 책임이란 생각에, 몹시 자괴감이 밀려왔습니다.
생방송이 시작되기전, 사전 리허설을 위해 태극전사서포터즈 대학응원단과 함께 무대에 올랐습니다. 모인사람들은 여전히 1,000여명 남짓합니다.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했습니다.
" 여러분 저는 2002월드컵 당시 서울시청앞광장 거리응원단장, 그리고 지금은 전종목 응원단인 태극전사서포터즈 총단장을 맡고 있는 윤대일입니다. 오늘은 아테네올림픽 국가대표팀 평가전인 한일전경기가 있는 날입니다.
이곳 북문광장에서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하시는 분들과 본회 응원단 회원여러분, 그리고 대한민국의 승리를 바라는 모든분이 함께 모여 한일전 경기를 응원하겠습니다. 비록 타는듯한 무더위이지만 쓰러질 각오로 오늘 이무대위에 섰습니다. 한국팀의 승전을 위해 태극전사서포터즈 여러분 더위를 불사하고 거리응원현장으로 나와주세요. 시민여러분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승전을 위해 승리의 함성~~~~~"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특설무대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2002한일월드컵 당시 응원곡 '오필승코리아', 'go-west','아리랑' 에 맞춰 응원무와 함성을 질렀습니다. 2,000명 이상 모였습니다. 마음을 놓을수 없는 인원이지만 방송을 위한 최소 인원이 된거 같아서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방송이 시작되자 정말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습니다. 하지만 거리응원현장에 인원으로는 맘이 차지가 않았습니다. 5시반쯤 방송은 마쳐졌고. 강병규사회자가 내려가고 방송장비는 반이 철수했습니다. 담당피디 얼굴이 일그러져있어서 쳐다보면 눈에서 레이져가 나오고, 입에서 불이 쏟아질것만 같았습니다. 무서웠습니다. ㅜ.ㅡ
경기시작전 30분 이제 필자의 시간입니다. 해가 서산으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숨어있던 회원들이랑 시민들이 고개를 삐쭉내밀며 북문광장쪽으로 하나둘 모이기 시작합니다. 필자는 다시 무대에 올랐습니다.
" 곧이어 한국과 일본의 평가전이 상암경기장에서 펼쳐집니다. 그리고 이곳특설무대에서는 스크린을 통해 우리선수들의 경기를 관전하며 응원불을 지피겠습니다.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분, 그리고 무더위에 숨어계신 태극전사서포터즈 회원여러분, 그리고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모든 국민여러분 함께 모여 비록 경기장엔 들어가지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 세계가 놀란 우리만의 거리응원문화를 만드는데 다시한번 주역이 되어주십시오.
비록 적은 인원이지만 한사람을 천명처럼 생각하고 우리선수들의 승리를 위해 쓰러질때까지 응원하겠습니다.
응원에 동참하실 주변에 계신 모든분들을 위해 자리에 앉아 계신분들께서 격려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모두함께 거리응원에 동참해 주길 바라는 열망의 함성~~~~"
지금까지 서울시청앞광장에서 외쳤던 것과는 대조적인 분위기다. 하지만 호소했다. 거리를 지나는 개미한마리라도 자리에 앉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간절하게 외쳤다. 어찌된일인가? 계획된 응원석까지 사람들이 들어찼다.
정말 가장힘든 날이었다. 내가 지를수있는 소리가 100이라면, 이날 1000을 소모했다. 응원하는 중에 목소리가 5번정도 쉬어서 않나왔다. 강제로 소리질러서 나오게 한다. 그러면 고장난 자동차 점퍼로 시동걸듯이 귀신처럼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좀더 걸죽한 발음으로, 목이 아팠다. 그런걸 걱정한 겨를이 없었다. 난 사람들이 와야 한다는 거 말고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외쳐 응원한다. 경기가 시작되고 대학응원단 들이 응원전을 계속 이거 간다. 북소리가 머리를 울리고 경기장에서 나오는 함성소리가 우리에게 들려온다. 1점 앞선 한국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했다. 더 힘을내서 응원하기 시작한다. 후반전 승리를 예감하고 몰려드는 인파와 응원소리에 사기 충천한 응원단들이 상암월드컵 경기장 북문광장앞을 꽉채울정도로 사람들이 모려왔다. 정말 기뻤다. 모든 특집방송은 다끝난뒤였지만, 중계차 1대가 현장 스케치만 해가는 광경이지만, 나는 기뻤다. 이제 승리를 보는 것으로 지금까지의 노고에 보답을 삼겠다는 집념이 생기는 순간, 일본이 1골 넣었다. 얼마남지 않는 경기시간 주심의 휫슬과 함께 경기는 종료되었다. 허망했다. 하지만 모여서 응원해 주신 분들에게 실망을 드릴수은 없는일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 경기는 비겼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해냈습니다. 저는 오늘 경기말고 또다른 무언가에 도전했습니다. 그것은 늘 응원했던 서울시청광장을 떠나 이곳 상암에서 거리응원전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경기장앞에서 응원한다는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믿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믿어주신 많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믿음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 정말 최선을 다해 응원했습니다. 무승부인 경기결과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저와함께 응원을 하며 포기하지 않으셨던 여러분의 의지와 믿음은 한국의 자랑스러운 거리응원문화의 애국자인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함성과 호응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응원문화에 관심가지고 방송편성및 계획해 주신 SBS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돌아가세요^^"
무대에서 내려왔다. 담당피디와 악수했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앙금과 내일 상사에게 들을 질타에대해 무척이나 걱정되는 눈치이다. 하지만 필자에게 수고했다고 격려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리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모두가 돌아가고 한창 무대정리 중인데, 할머니 두분이 유모차를 끌고 날 만나야 한다고 하셨다고 스텝이 전해왔다. 달려가 보았다. 눈물이 글썽 거리시는 할머니 두분이 와락 내팔에 팔짱을 끼시면서 내손을 두손을 꽊잡으셨다. 영문을 몰랐다. 그냥 감사하다고 인사하셨다. 그리고 또 감사하다고 인사하셨다. 손은 놓지 않으시고 또 감사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셨다. 스탭들하고 필자가 함께 진정시켜드리고 돌아가게했다. 할머니 막내아들과 비슷한 나이여서 그런지 가시면서도 필자를 계속 돌아보셨다. 깊은이야기를 못나눠서 아쉬었다.
모두와 어떻게 인사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차에 앉아서 눈물흘렸다. 힘든것도 있지만, 행사를 주최해서 인원을 편정하고 계획하는 것이 얼마 어렵고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 2002년한일월드컵 당시 이런부분을 담당했던 행사 총괄PD인 신동호PD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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